검찰, 스스로 변해야 산다(신성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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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실 작성일05-05-25 16:27 조회8,2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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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2005.5.17.) 에 게재된 신성호 논설위원의 시론입니다
검찰이 사면초가 상태다. 정부와 여당이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의 신설을 추진하고 있고,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선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는 형사소송법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던 경찰은 검찰을 향해 '권력의 고향'이란 말까지 써가며 수사권을 떼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평검사들이 급격한 형사사법제도 개편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잇따라 표출한 것도 이런 위기 의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검사들은
형사사법제도 개편이 국민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공판중심주의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게 '고비용 저효율' 문제다. 법관
수를 대폭 늘려야 하고 재판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가 범죄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 보호에 치중해 범죄자가 법망을 빠져나간다면 피해자의 인권은 누가 보호해 주느냐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엔 일리가 있다. 마땅히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개추위와 검찰 간 갈등을 지켜보는 국민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사개추위의 무리한
추진'이란 응답이 32.2%인 반면 '검찰의 기득권 지키기'란 대답이 47.7%를 차지했다. 특히 고학력층과 젊은층에서 '기득권 지키기'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는 분석은 검찰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마디로 검사들의 주장이 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검사들의 집단행동도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검찰에 대한 불신은 원죄나 업보라고 할 수 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몇 년 사이 검찰의 신뢰도가 높아졌다지만 살아있는 권력보다는 정치적 반대자에 칼을 들이대던 지난날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 국민이 많다. 검찰은 '법대로'라는 이름으로 대학가 시위나 노사분규는 물론 국회의원들의 항의 농성 등 정치판 갈등에까지 개입했었다.
권력이 정치적 목적에서 검사들을 '법 기술자'로 이용했던 셈이다. 오죽했으면 1980년대 후반 검사들이 수뇌부를 향해 "왜 우리가 정치판의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털어놨을까. 당시 검찰 수뇌부는 "과거 같으면 남산(중앙정보부.안기부가 있던 곳)으로 데려가 각목으로
해결했을 텐데 법이란 이름으로 검찰이 처리하게 됐으니 그나마 발전한 것 아니냐"며 후배들을 달랬다고 한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밖으론 정치적 중립을 확립하고 안으론 변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유전개발 의혹 사건과 청계천 주변 재개발 비리 수사는 하나의
시험대다. 한쪽에는 여권 실세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돼 있고, 다른 쪽에선 야당 대권주자 가운데 한 사람을 겨누는 형국이다. 일부에선 검찰이
'채찍'과 '당근'을 함께 들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를 불식할 수 있는 것은 치우침 없는 철저한 진상규명뿐이다.
검찰이 자기 것을
지키려 고집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스스로 변화하면서 버릴 것은 버리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도 살고
제도 이상의 권력을 가졌다는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70년대 후반 록히드 사건으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법정에 세운 뒤
조직이 경직됐던 일본 검찰의 경험을 참고할 만하다. 도쿄(東京)지검 특수부 출입기자였던 우오즈미 아키라는 저서 『파워 검찰』에서 이를 정치권의
압박을 이겨내기 위해 수사보다는 조직 방어에 치중한 결과로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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