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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참고인 조서 인정 안하면 '범죄 천국의 문' 열쇠 주는 셈 (조동석 차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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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실 작성일05-05-25 16:24 조회8,9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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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2005년5월12일)에 게재된 조동석 제주지검 차장검사의 시론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범행 후 태도는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가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고 뉘우치는 사람, 둘째가 처벌이 두려워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기는 하지만 증거를 조작하지는 않는 사람, 셋째가 처벌을 모면하기 위하여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증인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말을 하게 하는 등 증거를 조작하는 사람이다. 이 셋 중 가장 엄하게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대개 살인, 강도, 조직폭력, 마약, 부정부패, 상습사기와 같이 중한 죄를 지었거나 성품이 악하고 교활한 사람들이다.
현재의 증거법에 따른 수사방식으로는 그래도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어렵사리 처벌할 길이 있었다. 그러나 자백편중의 수사관행을 탈피한다는 명분에 급급하여 다른 증거확보장치를 마련하는 보완책 없이 지금 논의 되고 있는 것처럼 증거법을 바꾸어 버리면, 범행을 부인하고 증거를 조작하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처벌할 길이 거의 막히게 된다.
범인이 수사기관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진술을 담은 서류(자백조서)와 범인에게 불리한 제3자의 진술을 담은 서류(참고인 진술조서)는 범인이 재판에서 범행을 부인하기만 하면 휴지 조각처럼 되어버리고, 범인이 스스로 증거를 조작하거나 목격자나 제3자가 범인을 위하여 거짓진술을 하는 것을 막을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죄를 짓고 뉘우치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증거를 조작하는 사람들은 처벌을 모면하는 정의롭지 못한 결과가 발생한다.
훨씬 우려되는 것은 학습효과이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처럼 하면 처벌을 모면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애당초 첫 번째나 두 번째 부류에 해당하던 사람들도 점점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로 바뀔 것이 분명하다.
도덕군자나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범죄를 털어 놓아 처벌을 받기보다 범행을 부인하고 증거를 조작하여 처벌을 모면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더욱 큰 걱정은 범죄적 성향이 미약하던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범죄를 선택할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은 범죄인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결국 지금 논의되고 있는 형사증거법 개정안은 범죄인 천국으로 통하는 성문(城門)의 열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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